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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마을/산삼의 유래

산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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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의 유래 

약용으로서 인삼을 뜻하는 [蔘]자가 처음으로 문헌에 기록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이다.그것은 전한후기(前漢後期)에 사유가
쓴 급취장(急就章)에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보다 약 2백여년 앞서 이미 중국서북부 지방에서 나무와 대조각에 인삼을 사용한 처방이 생생하게 기록된 것이 발견된
일도 있다는 것은 이미 서술한 바 있다.


1969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인류의 기원에 관한 심포지움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하석인은 1950년대에는 백만년, 1960년대에는
 2백만년, 1970년대에는 3백만년 전으로 크게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과거에 발견 되었던 인류의 화석보다 더 오래된 것이 계속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새로운 과학적인 사실들이
드러남으로서 이에 따라 인류의 출연 연대가 수시로 수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같이 볼 때 산삼이 알려진 연대는 어떤 문자나 그림으로서 표시된 시대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멀리 선사시대에 인류가
산야에서 식물을 채집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옳을 것이다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폴다박사는 삼이 세상에 알려진 연대를 5천년전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식물을 식별하여 그것을 일상생활에
이용한 것은 선사시대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산삼이 인류에게 알려진 연대는 적어도 1만년 이상이 될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면서 질병이 생기게 되었고 질병이 생기자 그것의 치료법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이 발로 되었다.그리하여 원시적
의약으로 예민한 육감에 의하여 약초 등을 본능적으로 응용처리하거나 혹은 샤아먼(Shaman)의 도움으로 질병을 치료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원시적 약물이 기나긴 세월을 경과하면서 비로소 일반적인 약재로 사용하게 된 숨은 역사를 계산에 넣어서 인삼이 사람에게
알려진 연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삼을 동양의학적으로 치료약이나 본초로 사용한 것은 후한시대(AD196~220)장중경이 쓴[상한론]에서 비롯된다.113방의
처방중 인삼을 사용한 처방이 21방이 있음을 본다.이것이 인삼이 의약관계문헌에 난타난 최초의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탈리아 사람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는 아직 인삼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1692년에 네덜란드 삼 니콜라스가
지은[동북달단기]에는 인삼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그 후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의 자톡스 신부가 북경에서 인도와 중국의 총회계계 사제에게 보낸 1711년 4월 12일자 서한에서 인삼의
생태와 약효를 스스로 관찰 또는 체험하고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옛날부터 산삼이 나는 곳에서는 자기와 광채가 있으며,하늘에는 서광이 비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심마니들은 지금도
그렇다고 믿고 천문,기상에 예민하다고 한다. 천년 묵은 동자산삼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나 신화를 우리는 많이 들어 왔다.


불로장생의 선인식(선인의 음식)으로서의 식물성 약재에는 인삼을 비롯하여 잣,복령,계피,지황,맥문동,송엽,구기, 창포,대추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인삼을 재배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산삼을 인삼이라 불렀다.허준의 동의보감이나 황도연의 방약합편에는 인삼의 향명을 [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산삼을 채취하는 사람을 심마니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인삼의 우리나라 옛 말이 [심]인 것을 알 수 있으며
함북지방에서는 인삼을 방초라고 부르고 있다.


산삼은 채굴시기에 따라 봄삼,여름삼,가을삼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가을에 수확한 삼이 가장 좋다. 심마니들이 천종이라고 부르는
산삼은 자연 상태에서 자생하고 있는 산삼이다. 산삼의 종자를 산속에 파종하여 산삼 생육조건에 가능한 가깝게 건사해 주어 기른
것을 생육한 산삼, 즉 산양산삼이라 한다.또 산삼의 종자를 인가 주위의 밭에 심고 해가림 재배한 것을 장외삼이라 하며 이는
산양산삼보다 낮게 친다.


산삼은 생것을 먹는 것이 가장 좋다.산삼의 좋은 약효는 껍질에 많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산삼은 껍질채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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